아무 연고도 없는 모임을 찾아나선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드러내게 되는 ‘글쓰기’ 모임을 말이다.
활발히 사교 활동을 하던 2-30 때조차도 인맥이 닿지 않는 모임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창 인터넷 문화가 폭발을 해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익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더욱 쉬워졌을 때도 나의 모임은 늘 학연과 지연과 혈연을 통해 오프라인에서만 이루어졌다.
처음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것도 ‘친구의 친구의 친구’와 일로 만나 친해지면서, 거기에 나의 친구 한 명과 친구의 친구 두 명을 끌어들여 다섯이 모여서였다. 낯선 사람도 있었지만, 대충의 정보는 미리 공유한 후였다.
1년 정도 지속되던 그 모임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그러면서도 글쓰기 모임에 대한 욕구가 점점 더 커지면서, 나는 결국 한참의 망설임 끝에 인터넷으로 모임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세 군데 모임을 가입해, 난생 처음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 심지어 익명의 사람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처음 가입한 모임은 ‘밴드’라는 어플리케이션에서 찾아낸 곳이었다. 대학 동창들이 가입하라고 몇년 전부터 난리였어도 나몰라라 했던 짜증나는 어플을 핸드폰에 깔고 머리 아픈 가입 절차를 인내했다. 수많은 모임들 중에 ‘글쓰기’ 모임은 약 천여 개.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깊이가 얕은 수백 개의 모임들을 휙휙 쓸어올리다가 ‘토요일 토요일은 글을 써요’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발견했다.
가입 신청을 하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떴다. ‘글을 쓰려 하신다고요? 그렇다면 지금 주변의 모습을 글로 묘사해 보세요.’ 이런 질문을 던질 정도의 모임이면 대만족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입을 하고 모임에 참석했다.
근데, 내가 알기론 밴드는 장년층이 주로 사용하는 어플이라고 들었는데, 여기 친구들은 아무래도 2-30대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익명 모임은 난생 처음 해보는데,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나이 많다고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지,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밖에도 걱정되는 문제는 많았다.
용기 내어 몇 번의 모임에 참석해본 결과, 우려했던 문제가 나타난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하나 이상 만나며 적응해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게 상당한 도전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배우는 점이 많다. 모임이 거듭될수록 특정 사람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기쁨도 있다.
기본적으로 나에게 글쓰기 모임이 필요한 것은 형식적 동기 부여 때문이었다. 자기 표현의 욕구에는 최소한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몇 개의 이런 모임을 참여하다 보니, 모임을 지속시켜 가려면 그 이상이 필요한 것 같다.
남은 과제는 이것이다. 이런 익명 모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내용적 동기 부여도 가능할까? 혹시 그건 새로운 지속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걸까 아니면 매번 즉석 만남 같은 순간적인 관계에서도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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