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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굳이 모임을 해서 글을 쓰는 자의 2년차 경과 보고

 

2020-10-26 17:06:14

 

글은 그냥 혼자 쓰면 된다. 아마 세상의 수많은 일들 중에 혼자서 해도 되고, 또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글을 쓰기, 가 될 것이다.

 

그런데 굳이 글쓰기 모임을 참석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나. 처음엔 지인들과 함께 했고, 6개월쯤의 즐거운 시간과 6개월쯤의 지지부진한 해체의 시간을 겪었다. 그러고 나서는 인터넷으로 낯선 사람들의 모임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1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무려 다섯 개의 모임에 가입해서 월화수목금을 채워가고 있다.

 

대부분 운영자에게 회비를 내고 참석하는 모임이다. 내가 힘들어했던 모임 운영의 수고를, 적은 액수의 회비로 간편히 떠넘기게 되어 그런 걸까? 이제는 별 괴로운 일 없이 즐거운 모임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모임들은 일차적으로 나의 글쓰기에 (1) 시간과 장소라는 제약 겸 동기를 마련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2) 같이 타자를 치는 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든든한 기분, (3) 그리고 내 글에 대한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에 교감을 해주는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1 서평과 영화평을 주로 쓰는 모임

 

또 글쓰기 모임의 부수적 보람으로, 타인의 좋은 글을 읽는 즐거움도 생각보다 자주 느낄 수 있다.

 

저번에는 한 동료가 영화 [콜미 바이유어 네임]의 리뷰를 썼다. 워낙 상찬을 받은 유명 영화였지만 나는 초반부에 파티 장면까지 보다가 끄고 말았다. 남의 휴가와 식사와 파티 장면만 넋놓고 구경하기엔 난 너무 많은 영화를 봤고 저런 서양의 풍경은 이제 식상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리뷰어가 뒷부분의 결말에 담긴 감동적인 부모의 충고를 인용해주었고,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대단한 실력의 리뷰어의 글을 읽었으면 더 큰 감동이 왔을까? 그냥 소박한 리뷰였지만, 내게는 영화의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충분했다.

 

2 생활 에세이와 여행기를 주로 쓰는 모임

 

주로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곳에서, 최근 부모 집을 떠나 독립한 사람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젊은이의 심리에 대해 귀중한 인용구를 얻었다. 인용구는 위인에게서 혹은 사상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글 잘 쓰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모임 친구가 좀 더 나이 들어 위인이나 유명 작가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3 철학적 화두를 찾아 토론하고 다양한 형식의 글을 써서 낭독하는 모임

 

평일 낮에 하고, 또 전문적인 글쓰기는 표방하지 않아서 그런지, 정신적이나 성격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한 건 아니고, 거기서 오히려 색다른 글과 토론 방향이 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이 모임에서 나는 낭독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글의 한 발표 양식의 힘을 발견하게 됐다.

 

대중적인 모임을 하다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글을 읽게 된다. 좋은 글도 나오지만 형편없는 글도 많다. 그럴 때 지루하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성의 있게 참여하다 보면, 거기서도 일정 정도의 정보와 교훈은 물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함께 해서 나오는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혼자 고립되어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얻은 마음의 양식과 결과보다, 그리고 대학원 같은 권위주의적 기관에 들어가서 얻은 학맥과 학위의 보잘것없는 힘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게 아직까지의 판단이다.

 

 

위의 세 종류 모임을 시작한지 이제 1년 반이 돼간다. 그리고 왠지 이 모임들도 이제는 수명이 다해가는 느낌이다. 운영자와 나, 둘만 나와서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렇게 모임이라기보다 만남인 글쓰기도 나름 정겹고 힘이 되지만 아무래도 여럿이 함께할 때보다 맥이 좀 빠지긴 한다.

 

그래서인지 실은 얼마 전에 모임을 두 개나 더 시작했다. 하나는 보다 전문적인 글쟁이들, 작가들이 모인 작업실에서 개설한 모임이고 또 하나는 결국 내 주변에 모인 지인들과 직접 만들어 다시 운영자의 역할을 맡게 된 모임이다.

 

작가들의 모임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참, ego들과 부자연스러운 작위를 참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잘 쓴 글들을 읽을 수 있고, 아직까지는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

 

내가 이끄는 모임은 역시나, 부족한 리더로 인한 죄충우돌과 동료들의 불성실 + 얻어가는 거 없음 + 쌓이는 피로감이아무래도 오래 갈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