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9 11:05:11
올해 제주 여행을 자주 가게 됐다. 대부분 동반자가 있었고 제주에 사는 친구와 같이 다닐 때도 많아서, 혼자 다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는 숙소 주변 산책은 주로 혼자 즐기게 됐다. 나지막한 돌담과 수풀이 자라는 나대지(노는 땅)와 저 아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은 오후에 주로 방문하는 어느 관광지 못지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동네 개들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유난히 사나운 표정으로 짖어대며 따라오는 통에, 별로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편인 나도 위협을 느끼며 후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얘기를 제주 사는 친구에게 했더니 혼자 다녀서 그렇다고 했다. “개는 기본적으로 무리 동물이니까 혼자 다니면 업신여긴다고.” 좀 의아하면서도 놀라운 진단이었고 “업신”이라는 단어의 선택이 강렬했다.
다음에 친구와 제주 여행을 같이 갔을 때, 어느 아침 일찍 선배가 숙소를 나서며 혼자 마을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마 나랑 계속 붙어 있는게 피곤해져서, 그녀에게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았다. 그러나 나는 허둥지둥 따라 나서며, 동네 개들의 무서움에 대해 경고했다. 혼자 다니면 업신여겨서 더 공격한다던, 제주 사는 친구의 설명도. 작은 몸집의 여자인 친구는 겁을 내며 나의 동행을 허락했다.
과연, 지난번 나 혼자일 때는 무섭게 달려들던 동네 개들이,비록 몸집 작은 여자들일지라도, 우리 둘과 마주치자 슬슬 피하며 길 한 켠으로 비켜서 갔다. 나랑 친구는 놀라워 하며 소리쳤다. “오오, 피한다, 피한다! 이래서 인간이 무리를 짓고 사회를 만든 거구나!”
무리를 짓는 인간의 사회적 속성은 관심을 가질수록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느낀다. 얼마 전 책을 보다가 이와 관련해서 골때리는 대목도 발견했고 말이다. 미국의 어떤 과학자가 20년에 걸쳐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비만과 불면증의 해법을 알아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약물과 식이요법을 비롯해, 운동 등 생활습관까지 두루 실험을 해본 결과, 확실한 효과가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햇살이 비쳐드는 방에서, 몇 시간 서서 일하면서, 한쪽에선 대형 화면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들거나 활동하는 동영상을 틀어두는 것이었다. 그것은 즉,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여전히 구석기 시대 생활 방식에 맞춰진 채이므로, 무리지어 채집, 혹은 사냥을 떠나던 습관 대로 생활해야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겪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만 그 책의 실험자는 과학자이자 워커홀릭이었고 지금은 현대이므로 가상의 환경을 만드는 꼼수를 부려, 진짜 무리 활동을 하는 대신, 우리 신체를 살짝 속이는 방법을 택했다.
요즘 이런저런 책을 두서없이 읽어대고 있어서… 그 책이 어느 것이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나의 여행 중독과 걷기에 대한 집착이 몇년전부터 시작된 불면증과 꽤 관련이 있다는 점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던 차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도 비슷한 경험담을 공유했던 터라, 이 이야기의 실효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역시 여행 중독자인 지인에게 제주 마을의 개들 얘기를 했더니, 그럴 때는 작은 돌이나 막대기를 준비해서 나가라는 거였다. 개가 짖을 때는 돌을 근처로 날리거나 막대로 벽을 딱딱 치면서 위협을 하면 도망간다고. 인간은 무리 동물이기도 하지만 또한 도구를 이용해서 상황을 보완하는 동물인 것이다.
최근 다른 책에서 읽은 내용도 더 있다. 이번에는 저자와 제목을 알고 있다. 장대익의 신간 [사회성이 고민입니다]에 의하면,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감정은 신체적 고통과 동일한 기제로 작동되는 회피 행동 유도(인간이 혼자가 되면 위험해지는 시대가 있었으므로) 증상이며, 따라서 ‘진통제’로 대증적 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즉 실제 무리 활동을 안 하더라도 진통제를 먹으면 외로움, 즉 고통스러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거다. 현대 문물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사회적 욕구에 대한 해법도 기괴해진다.
그래서 나의 해법 역시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위계가 없어져서) 갈등이 많아지고 (시스템을 이용해) 고독해진 현대 사회에서, 나 역시 친지들 혹은 부족민들과 ‘진짜’ 무리 활동을 함께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행갈 돈이 떨어져, 대신 주말마다 주변 사람들을 모아 산책 모임을 조직하다가, 한계에 부딪혔다. 그리고 모임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걷기’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다. 예상대로 수많은 모임들이 검색되었고, 그중 내 성향에 가장 맞는 곳을 선택해 가입했다. 글쓰기 모임에 이어, 또다시 익명의 모임으로 사회적 욕구를 풀게 될 것 같다. 신간 편하게 혼자 살면서 굳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고생을 자처하는 사람들 역시 사회성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채우는 가상적(?) 방법을 이용중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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