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최초의 스터디 모임에 대한 글은 이미 다른 블로그(blog.naver.com/uchatn/221197079913)에 썼다. 그 다음으로 몸담았던 스터디 모임은 뭐였더라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이 대학교 때 학회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가장 오래한(4년 6개월) 모임이었다. 반장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리더가 되었던 모임이기도 했다.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고 불편했고 미숙했지만, 모임의 목적 자체는 내 성격과 경력의 핵심을 쭉 이루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는 인문계 대학에 들어가면 스터디 모임에 가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생이 되면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에 더욱 가까워지고, 우리 때는 특히나 교수들에게서는 배울 게 없었다. 내가 국문학과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가입한 학회(동아리)는 ‘현대 문학 비평’ 학회였다. 그밖에도 창작이나 고전문학, 어학 등의 학회가 있었고 그중 일부는 중복 가입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중심을 두었던 건 ‘비평’이었다.
난 늘 세상을 더 많이, 더 깊게 알고 싶어 했고 그러면서 비판하는 걸 재미있어 했다. 사회학이나 철학, 역사 등 인문계 학문들이 모두 비슷한 목적과 성향을 가지고 세상을 탐구하지만, 문학은 특히나 구체적이고 미적이며 비판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다뤘다. 문학에도 기준이나 절차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제멋대로라는 것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그중에서도 ‘비평’이라는 건 ‘비판’을 ‘비판’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이런 건 나의 이상적인 바람일 뿐이었고, 당시 대부분의 학회는 그냥 신입생들에게 운동권 입문서를 읽히고 본격적 운동권 조직으로 배치시키기 전 예비 단계, 미끼 조직 같은 거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읽은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들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비판을 넘어 세계를 혁명시키자는 내용의 글로, 신입생들의 머릿속을 한바탕 뒤집어 주었으니까. 그런데 모임 자체는 상당히 기계적이고 관성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3학년이던 학회장들이 신입생들을 학회로 끌어들이며 유행처럼, 혹은 영혼 없는 자동인형처럼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 요즘 무슨 고민 있니?
대학교 운동권 조직의 실용적 의미를 깨닫게 됐던 건 내가 2학년이 되어 1학년 후배들을 모으면서였다. 나는 더 이상 “너 요즘 무슨 고민 있니?”라는 질문 아닌 질문으로 후배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야, 대학 들어와서 적응도 하고 인간관계도 쌓고 하려면 학회도 하고 운동권 문화를 맛이라도 봐야 해.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다 사회에 저항하는 모임인 줄 알겠지만, 사실은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모임인 거다, 너.” 지금 보면 평범하겠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꼬심의 말이었다. 후배들이 비평 모임에 대거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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