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겁결에 국문과에 들어오긴 했지만,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는 생각은 차마 못하고 있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니 공부는 재밌겠다 싶었지만 백일장 같은 데서 상을 탄 적도 없었으니까. 난 늘 사생대회 파였다.
국문과에 모인 아이들은 당연히 시인, 소설가 지망생이 많았고 그런 녀석들이 주로 수업이나 학과 활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나 학생회 구성 때부터 시창작모임이나 소설창작모임 구성원들 목소리가 서로 질세라 제일 시끄러웠다.
하지만 학우들 중에는 나처럼 글쓰기에 자신 없는 사람이 꽤 많았고, 실제 우리 학과의 정식 명칭은 ‘국어국문학과’였다. 일반적인 인식이 어쨌거나, 명칭에 있어서는 ‘문학’보다 ‘어학’이 먼저였던거다. ‘문학’에 자신없는 아이들은 작가 지망생들을 부러운 눈으로 곁눈질하며, 원래부터 ‘언어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척, ‘언어학 스터디’ 쪽으로 모여들었다.
처음 언어학 모임에 갔을 때 십년 넘는 선배들까지 환영회에 대거 나와서 깜짝 놀랐다. 대학 신입생이 되어 그동안 봐왔던 선배는 대부분 2학년과 드물게 3학년이 다였는데, 여기는 대학원 박사 과정들까지 참석해 신입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게다가 전혀 후배들과 어울려다니지 않을 것 같은 외모의 대학원 여자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공부 모임에 간사로 참여해 지도해줄 거라고 했다.
90년대의 대학은 학생들이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비운동권 학생들은 학과 모임에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고 도서관에서 살거나 다른 ‘건전’ 동아리 활동을 하던 시대였다. 그들은 주로 향락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바로 그런 비운동권 선배들이 후배들 공부 모임을 지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신입생 환영 행사들을 통해 좀 물든(?) 1학년생들과 달리, 그들은 모임을 ‘학회’라고 부르지 않고 고집스레 ‘스터디’라고 불러서, 약간의 위화감이 조성되었다.
첫 학기 우리 ‘언어학 스터디’ 지도를 맡은 언니는 진한 화장과 긴 생머리의 대학원생이었다. 그녀는 언어학이 얼마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학문인지 역설하며 요즘 언어학의 동향에 대해서 꽤 흥미롭게 소개를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인문학계 전반에 유행하던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사상은 모두 언어학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간사 언니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한물 가고 촘스키의 시대가 왔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변형생성문법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줬다.
그러나 책을 봐도, 설명을 들어도, 이론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혹은, 그냥 하나 마나 한, 별 의미없는 내용으로 느껴졌다.
요즘 노엄 촘스키는 언어학자보다는 사회비판가이자 운동가로 이름이 높다. 아마 언어학 연구는 중단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때의 대학원 선배는 그런 촘스키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그녀도 사회에 참여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몇 달에 걸쳐 후배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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