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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전적인 위계와 권력의 남용

 

대학에 들어가서, 비평을 공부하는 모임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모임은 냉큼 들어갔지만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에는 좀 미적거리다가 들어갔다. 두 개의 모임도 벅찬데 세 개나? 그래도 공부 해보고 싶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이왕 하는 김에 3관왕을 하지 뭐. 하는 심정으로 들어가긴 했다.

 

가보니, 고전 모임은 나쁘지 않았다. 비평 모임처럼 끈끈하지도, 언어학 모임처럼 쿨하지도 않고, 딱 그 중간 분위기의 소박하고 고졸한 맛이 있어서, 가면 마음이 편했다. 선배들도 꽤 다정하게 챙겨주면서도, 전혀 강압적이지는 않은 분위기여서 감사했다. 딱 한 경우만 제외하고.

 

한 남자 선배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남자 동기가 있었다.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약간 덜떨어진 그 남자 동기를, “내 고등학교 후배, 내 쫄다구하면서 그 남자 선배는 열심히 챙겼다. 하지만 그의 살뜰한 챙김이 전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구박도 많이 했다. 조금만 게으르거나 모자란 부분이 보이면 무섭게 질책하고 욕설과 손찌검까지 가세되는 분위기였다.

 

다른 후배들에게는 예의바르게 대하는 선배가, 특히나 여자 후배들에게는 엄청 조심스럽게 대하는 선배가, 자신의 고등학교 후배, 두 겹의 후배에게는 저렇게 태도가 달라지는 게 나는 이해가 안 돼서 항상 눈살을 찌푸렸고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이렇게 회고록의 한 꼭지로까지 쓰게 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그의 행동을 말리거나 뭐라 하지 않았다. 그냥 방관했고, 피해자인 나의 남자 동기도 당연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에 들어서야 태움, 갑질 등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전형적인 비현대적인 위계와 권력의 남용이었다. 사실 것이 많은 입장에서 받을것이 있는 자에 대한 열정 착취, 혹은 괴롭힘은 오랜 세월 동안 관습적으로 정당화돼온 역사가 존재한다. 쿵후를 배우러 가면 마당 쓸기3년 물긷기 3년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관습이 거의 필요 없도록 교육 제도와 기술이 발전한 현대에, 그런 건 타파해야할 구습이 돼버린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아직도 줄 자받을 자사이 호혜의 불균형은 존재할 텐데, 그 차이는 뭘로 공평해지는 걸까? 그에 대한 관습 혹은 제도는 마련이 돼 있던가?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불균형을 갑질로 메우면? 사람을 막 대하고 괴롭히는 게 가해자에게 무슨 이득이 되지? 속이 시원해지나? 친절함보다 괴롭힘이 에너지가 덜 들고 편하고 쉬운 것일까?

 

그나저나 그들은 아직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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