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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직의 동원령과 딴짓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인간이 의지를 세계에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혼자 애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꽤 많은 경우, 사람을 모아야 한다. 혼자는 너무 허약하니까, 여럿의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이루려고 할 때는 조직이 생기고 위계가 생겨서, 할 일을 배분한다. 그러다 보면 ‘큰 목표’를 위해서 이뤄야 하는 작은 목표, 즉 일거리들이 생기는데, ‘큰 목표’에는 다들 동의해서 모였더라도, 떠맡은 일거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생긴다.

대학 때 학생 운동을 할 때도 그랬다. 그렇다고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건 아니고, 90년대에 대학생이 되었으니 적어도 운동권 경험은 해보고 싶었다. 그 당시엔 그게 대학 생활의 찐경험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하부 조직쯤 되는 학과 모임에도 들어가고 중요한 집회가 있다고 하면 선배들을 따라서 거리로 나갔다.

학회에 들어가서 세미나를 하는 시간은 좋았다. 좋다, 고 하기엔 너무 암담하고 무서운 내용들일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철학을 비롯해 처음 보고 듣는 세상 이야기에 지적 욕구가 짜릿하게 충만되었으니까.

하지만 집회에 나가 앉아 있거나 행진을 하는 시간은 너무 싫었다. 형식적인 식순들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저 앞쪽에서 음질 나쁜 확성기로 떠드는 연설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내용도 이미 세미나 때 다 보거나 들은 내용의 단순화된 전달이었다. 유치한 노래(투쟁가)나 춤(선동무)를 따라해야 할 때는 더욱 고역이었다.

거리 행진을 할 때는 지루함을 넘어서 위험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백골단(경찰)이 위협하는 거리 행진 때는, 광장 집회 때처럼 그냥 땡볕과 추위에 몸을 내맡기고 견디는 것을 넘어 어디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조직의 목적이, 즉 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나에게는 대학 생활의 찐경험이, 내 육체를 희생할 정도로 중요한가 판단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래도 무슨 극한 경험이든 할 의욕으로 가득했던 신입생 시절에는, 광장 집회에 나가 아스팔트 위에 몇 시간씩 앉아 있는 정도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다만 지루하고 지겨울 뿐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회의감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여기서 내가 하는 역할은 몸 대주기 이상은 아니고, 저기 앞에서 떠드는 지도자(?)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 관심이 없이, 그저 자기 말에 따라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원하는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병졸 역할, 즉 머릿수에 보탬이 돼주는 역할이 맡아야 함을. 내가 그렇게 특출난 인간이 아닌 이상 말이다. 주인공(히어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조직에서나 아주 소수다. 아무리 대하서사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건 기껏 많아봐야 열 명 이내다.

그러고 보니 특이한 내용의 투쟁가가 하나 생각난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는 제목이었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노동 해방 내일 위해 싸우는 동지들이 있잖아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 보세요,,,” 다른 모든 노래가 숭고한 민주주의 등 대의와 목적을 찬양하는 가사 일색에 장중한 곡조였는데,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는 노래만은 발랄한 동요 풍으로, 이름 없이 동원되는 ‘병졸’들을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다른 모든 당시 운동권 투쟁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에도 이 노래만은 살아남아, 심지어 가끔 라디오 등에서 들린다는 거다. 조직은 목표는 사라져도 동원의 필요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테니까. 참 유용한 노래로 살아남았나보다.

그런데 그런 광장 집회 때 내 눈에 띄는 아이 둘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발탁되어 주인공 역할을 맡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아이 둘은 사실 잠재적 주인공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벌써 윗자리에 가서 설치고 있을 수는 없고, 당분간은 나처럼 병졸 역할을 맡아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다. 즉, 그 둘은 항상 집회 시작 때 같이 있다가, 집회가 한창 진행중에는 어느샌가 슬며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두어 시간이 지나 집회가 끝나고 갈라져 뒤풀이를 하러 갈 때 다시 나타났다.

나중에 그중 하나는 결국 조직 내에서 차분히 단계를 밟아 올라가다가 정치계에서 꽤 성공했다. 또 하나는 다 때려치고 예술가가 되었는데, 거기서도 이런저런 곡절을 거쳐 결국 교수가 되었다. 교수가 된 친구에게 나중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 만날 집회 때 사라졌지? 어딜 갔던 거냐?” 그랬더니 그 친구는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때로는 집회 장소에서 서점이 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점을 지적했더니 그애는 말했다. “그럼 근처 어디 으슥한데 짱 박혀서 가져온 책을 읽었지.”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바보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