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는 총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이 있다. 학과 학생회장과 단과대학 학생회장 동아리 연합회장 등, 참 학생들에게는 자치 조직이 있고 그 조직에는 꼭 수장과 함께 집행부라는 임원들이 있는 것이다. 하긴뭐 초등학교에도 반장을 넘어 학생회장은 있었고 그걸 맡은 남자아이가 얼마나 으스댔는지는 기억에 선명하게 떠오르니까 말이다. 암튼 웃긴다, 어른 흉내 같다, 같잖다는 인상이, 어린 나에게는 있었더랬다.
대학 선배에게 이번 학생회장 선거 운동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 그런 인상이 중요하게 작용했던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욱 큰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건 바로 정파 문제였다. 당시 대학생 운동은 두 개의 정파로 나뉘어 꽤 심각한 대립을 하고 있었고, 학생회장이 어느 정파에서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마치 지금의 한국 정치 지형과도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아서 더욱 웃긴데…
신입생이던 나는 딱히 한쪽 정파의 편을 들지 않고 양쪽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공부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어장 관리를 했던 모양새인 것 같지만, 나름 괴로워하며 꽤 치열하게 고민을 하던 문제였다. 그리고 당연히 양쪽 정파에서 다, 나에게 선거 운동에 참여하라고 권유했다. ㄱ정파에서는 나의 대학 여자 동기들이 대부분 참여하는 선동대라는, 춤추고 노래하며 시선을 끄는 역할 분대에 들어가라고 했고, ㄴ정파에서는 무려 회장 후보의 수행 비서 역할을 맡으라고 했다. 난 당연히 수행 비서를 맡았다.
남자애 둘과 여자인 나 하나로 이뤄진 회장 후보의 수행 비서란, 회장과 부회장 후보의 소지품과 의상을 관리하고 유세 스케줄을 챙기는 일을 하는 거였다. 얼마전에 [김지은입니다]를 보다가… 전혀 규모는 다르지만 그녀가 책에 실어놓은 일과표와 체크리스트를 보고 갑자기 그때 기억이 언뜻… 아무튼 김지은 씨도 그랬지만 내 역할도, 수행 비서란 뭐랄까.. 좀 애매하고 꺼림칙한 면이 있기 마련이었다. 회장 후보단과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하게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ㄱ정파의 회장 후보 남학생과 수행 비서 여학생은 커플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 ㄴ정파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묘한 기류가 없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심상찮은 기류’는 남회장 후보와 나 사이의 썸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나와 교류하던 ㄱ정파의 동기들, 선배들이었다. 자기들과 함게 선동대에서 춤과 노래를 출 줄 알았던 내가 난데없이 큰 수첩과 가방을 들고 ㄴ정파 회장 후보들과 분주히 캠퍼스 안을 가로지르자, ㄱ정파 동기와 선배들은 경악한 표정을 넘어 죽일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왕따가 될까봐 겁이 나기도 하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고 다니기가 힘들었다. 업무 자체도 재밌다고 하긴 힘들 종류라서,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우울한 얼굴을 하고 다녔다.
요즘 대학들은 총학생회 구성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후보들이 여럿 나와 정치권 못지않은 열기와 물량 공세가 펼쳐지던 옛날이 더 바람직한 건지 아니면 지금의 무관심(해도 되는?) 상황이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 결국 그때의 선거는 졌지만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재미있는 경험 한 번 했으면 그것으로 족했으니까. 솔직히 후보로 나왔던 학생회장도 같은 심정인, 아니 오히려 안 돼서 안도하는 듯 보였다. 나중에 들으니 국내 굴지의 광고 기획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알고 보면 대학생 학생회 활동은 괜한 치기어린 정의감 같은 문제가 아니라, 꽤 넉넉한 장학금과 활동비도 받을 수 있고 취업에도 무척 유리해진다.
그때 같이 선거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의 인맥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꽤 오래 연락하며 지냈다. 그중에서도 나랑 같이 비서 역할을 맡았던 남자애 둘은 의상학과 남학생들이었다. 의상학과에 단 둘 있는 남자들, 청2점이 하필 둘 다 ㄴ정파의 비서 역할을 맡다니, 물론 적절한 배치긴 했지만 좀 짓궂은 느낌도 들었다. 아무래도 그중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던 남자애는 게이 같았는데, 졸업 무렵까지는 연락을 하다가 끊어져서 좀 아쉽다. 나머지 하나는 까불거리는 성격의 남자애였는데, 의류 사업을 할 거라는 목표가 확고했었다. 둘 다 자치라든지 사회 정의 같은 데는 관심 전혀 없이 그저 재미있어 보여 선거 운동을 한 거였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때 ㄴ정파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나를 노려보던 선배를 졸업하고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공연계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였다. 학창 시절 내내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던 그 선배는, 어느덧 사회 생활 10년차가 되어 만난 나에게 멋쩍은 웃음을 건네며 일상적인 안부와 업계 동향을 물어보았다. 우리 둘 다 선거 운동 때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지만, 술자리 내내 약간의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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