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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2002년의 열광과 공동체의 희생양

 

나는 원래 아웃사이더 성향이 강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전사회적으로 왕따가 되는 건 특별한 경험일수밖에 없다. 2002년의 한국-일본 월드컵 개최 때 말이다. 지금이야 오랜 세월이 지난 후니까, 그때 자기도 왕따였노라며 함께 울분을 토하게 된 사람들도 가끔 만났지만, 그때의 난 철저히 혼자였다. 사회 전체에서 내쳐진 듯한 느낌이 팔뚝의 피부 위로 스멀스멀 기어다니던 감각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두 번째 직장(steemit.com/kr/@uchatn/1-dot-com-bubble-i-am-in)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처럼 반골 기질이 상당하던 동료들도 처음에는 월드컵 같은 민족주의적 스포츠 행사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행사일이 가까워지고 본선 경기가 달아오르며 점점 국민적 열기는 모두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도, 주변 친구들도, 예외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인 전체가 모든 일을 작파하고 거리로 뛰쳐나오기에 이르렀다.

 

나는 거의 히스테리를 일으킬 지경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할 경우,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는 게 아니라, 거의 살의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며 반박을 했기 때문이다.

 

난 축구가 싫어. 너도 그러지 않았니? 세금 처들여서 남들 공차는 거 보여주는 데, 거기 열광하는 건 정말 아니지 않니?”

? 사람들이 다들 즐거워하는데, 나도 거기 같이 끼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 됐다는 거야?”

 

한참 후에 그때의 얘기를 꺼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광적이지 않았어, 그냥 신나서 룰루랄라 돌아다녔을 뿐이었어, 라고 말하지만, 그때 내가 본, 일심동체가 되어가던 사람들의 광기는 특정 종교의 광신자들의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동참하지 않는 자에 대한 공격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그때의 열기와 군중의 힘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2016년의 촛불 혁명이 가능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국 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힘이 모이려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만으로는 불가능한,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사피엔스]에서 말하는 바도 그거였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는 후속작 [호모 데우스]에서 그런 공동체 정신은 반드시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을 한다. 나는 특히 후속작을 보며 모골이 송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