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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년기에만 골목 대장

 

 

유년기에만 골목 대장

 

 

글쓰기 모임의 리더가 오랜 여행을 떠나며 우리와 이별하게 된 기념으로 공동의 주제글을 써보자는 말이 나왔다. 우정이라는 주제로. 어린 시절 친구 얘기를 쓴 사람도 있고, 썸 타던 이성친구가 여행을 떠나며 이별하게 된 이야기를 쓴 사람도 있고, 원래 쓰던 소설에 슬쩍 친구 캐릭터를 끼워 넣은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 동안 혼자서 친구에 대한 글을 몇 편 써본 적이 있다. 다만, 송별 기념으로 쓰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는 좀 망설여졌다. 이야기가 좀 어둡게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 하긴 뭐 내 글이 안 어두운 게 있겠냐마는. 어두운 게 나쁜 것도 아니고.

 

어쨌든 그래서, 차라리 좀 더 목적이 뚜렷하고 거리감이 있는 인간관계, 특히 이 글쓰기 모임에 대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은 게 저번 글이다. 한 번쯤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기분이 들기도 했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있으니 소개 겸 해서. 그런데 그러고 나니 왠지, 그 동안 내가 몸 담았던 모임들, 공적 모임은 아니나 친목이라고 하기는 힘든, 목적의식적이고 자발적이었던 모임들에 대한 글들을 계속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3개로 확장을 멈췄던 블로그를 이참에 하나 더 개설해야 하나...

 

모임에 대한 회고록을 쓰다 보니,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 봐도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일종의 골목대장이었던 것 같다. 그다지 기억이 또렷치는 않고, 또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믿어지지가 않지만...

 

골목골목 이어지던 어린 시절의 주택 단지, 학교 들어가기 전 꼬마들은 공터에서 땅따먹기와 술래잡기와 고무줄을 하면서 놀았다. 그날도 나는 친구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놀이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서툰 아이에게는 서툴다고 화를 내고, 재빠르지만 남을 밀치는 등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도 혼을 내주었다.

 

어느 순간 엄마가 나를 불렀다. 놀이를 그만 하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왜 그러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엄한 표정은 처음 보는 듯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엄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무슨 드라마에서처럼 안방 아랫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맞은편 윗목에 얌전히 앉으라고 했다. “저번에 얘기했었지? 친구들에게 고함치고 윽박지르면 못 쓴다고.”

 

그제야 생각이 났다. 동네 아이들과 나는 친구사이니까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기로, 다정하게 지내기로, 저번에 엄마랑 약속했었다. 그때 엄마는 자상하게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좀 무섭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그칠 때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던 몇몇 친구의 얼굴이 생각났다.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좀 이상했던 게,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흘리는 반성의 눈물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혼나는 게 서러워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았고, 엄마도 꾸짖는다기보다는, 나의 성격이 걱정되어 차근차근 타이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한참을 대성통곡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그 흔한 반장 한 번 해보지 않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년 초가 되면 쭈뼛쭈뼛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 리더가 돼서 지휘를 시작하면 뒤에서 비딱하게 이죽거리다가, 마침내 내가 리더를 맡을 만한 입지가 돼면 발작을 일으키듯 거부하고 기대들을 쳐내는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물론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여유가 생겼고 간혹 리더를 맡는 일도 있었지만, 아직도 나의 내면 속에선 어린 시절의 길길이 날뛰던 리더와 사춘기 시절 쭈뼛거리던 비딱이가 드잡이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물론 외부적으로는 그런 나의 내면을 눈치채는 사람이 많지는 않도록 조심하고 있지만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한 친구가 이 글을 보고 "정상적인 관리자의 모습인데 어머니는 왜 화를 내셨을까?" 라는 감상평을 내놔서 폭소가 터졌다. 반면 늘 정치적으로 너무나 올바르기 짝이 없는 한 친구는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한 아주 성숙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조언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나를 일방적으로 편들었던, 나와 비슷한 친구의 촌평 한 문장만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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